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덕천(德川) 사람이다.
1919년 4월 고향에서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대한독립단에서 파견된 김달규(金達奎)·박승엽(朴承燁)·이원보(李元甫) 등이 조직한 덕천 대한독립단 지단에 가담하였다.
이때 유림 거두인 정진원(丁進源), 그밖에 덕천지역의 유력자인 정붕익(丁鵬翼)·정계록(丁繼綠)·이종현(李宗鉉)·김승문(金勝文)·강형익(姜亨益)·이문실(李文實)·안윤관(安允寬) 등이 함께 가담하였다. 이들과 함께 1919년부터 1921년까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여 상당액수를 모금하여 만주로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일경에 탐지되어 1921년 6월에 체포되었으며, 1922년 2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정진원과 함께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1. 10. 16, 10. 17, 10. 18, 1922. 2. 25)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9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98·524·5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