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김상종(金象鍾) 의진에 참가하여 경북 의성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의 변보(變報)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이어서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그 분노를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 봉기는 태봉(胎峰) 전투에서 실패한 후, 안동부를 중심으로 의병장들이 다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전투를 준비하였다. 그중 안동 의병진은 김도화(金道和)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병력을 보충하여 안동읍을 중심으로 진영을 설치하였다.
경북 의성지방에서는 이같은 시기에 김상종을 중심으로 거의하였다. 김상종 의진은 의병장에 김상종, 소모장에 김수욱(金壽旭), 중군장에 권대직(權大稷), 관향장에 김수협(金壽莢) 등으로 편성되었다. 이 때 김수담도 의병진의 선봉장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이 시기 경북지역에는 의성지방 뿐만 아니라 영양의 김도현(金道鉉), 진보의 허 훈(許薰) 등이 의병을 일으켜 호응하고 있었다.
김상종 의진은 황산(黃山)을 점거하였으나, 1896년 3월 29일 일본군과 접전하여 그들의 우세한 화력 앞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분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선봉장 김수담과 관향장 김수협 등이 전사, 순국하였다. 그러나 김상종 의진은 을미의병이 종결된 이후 「을사륵약(乙巳勒約)」의 내용이 알려지자 각지의 유림들에 통문을 보내 재궐기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의성군지(의성군지편찬위원회, 1987) 106면
- 항일독립운동의성군자료집(1992) 483면
- 망금성백오십운(필사본, 1900)
- 문소의 얼(의성군 교육청, 1979) 57·58면
- 義얼의 메아리(박인걸, 1983) 58면
- 의원(의성항일독립운동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1991) 13·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