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전라남도 화순(和順) 사람이다.
그의 나이 20세 무렵 불교단체의 장학금으로 상해에 유학하여 동제대학(同濟大學)에서 학문을 닦았다.
1923년 10월 24일에는 학생으로서 임시정부 내무총장 입회 하에 선거 결과 황재건(黃在健)과 함께 상해교민단 동구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5년 5월 30일에는 동 대학의 중국인 학생들과 더불어 상해역 앞에서 조계(租界)의 회수, 제국주의의 타파, 치외법권 철폐 등을 부르짖으며 배영(排英)운동의 시위를 한 일도 있다.
1923년 겨울 상해(上海)에서 재중국 한인 유학생(在中國韓人留學生) 300여명을 규합하여 배일독립운동 단체인 한인청년동맹(韓人靑年同盟)을 조직하였다.
1924년에는 상해 한인유학생회 총무 및 화동한국유학생회(華東韓國留學生會) 재무위원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26년 10월 23일에는 상해에서 3개 단체로 통합하여 창립된 한인학우회(韓人學友會) 사교부의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다음해인 1927년 3월에는 상해의 3·1당에서 한인재중청년회(韓人在中靑年會)의 상해지구 대표로 선임되었으며, 10월에는 중국 각지의 독립운동단체를 규합, 연합체를 조직할 때 한인청년동맹의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에는 이 조직을 중심으로 항일독립투쟁을 하다가 동 4월에 체포되어 8월에 신의주(新義州)로 압송되었으며, 1929년 6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 만기 출옥한 후에는 광주 무등산에 은신하여 독립정신 고취에 이바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182면
- 고등경찰요사 139·140·14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84·422·889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564·623·6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586·588·592·593·595·596·91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034·10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