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서울 종로(鐘路)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으로 인하여 일제 경찰과 군대의 경비가 삼엄할 때 세브란스 병원 엑스선(X線) 암실에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하여 배포하였다. 1919년 4월에는 지하신문 「반도목탁(半島木鐸)」을 발간하여 배포하고, 부정기적으로 「국민신보(國民新報)」를 발간하여 배포하였다.
1919년 7월 중국 상해로 임시 피신하였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손정도(孫貞道)가 발행한 「국내동포(國內同胞)에게 호소(呼訴)함」이라는 전단(傳單) 5천매를 서울로 반입하여 배포하였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전개에 대비하여 조직한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서울총지부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으며, 임시정부가 발행한 「외교특보(外交特報)」를 국내에 배포했다. 안재홍(安在鴻)·이병철(李秉澈)·조용주(趙鏞周)·연병호(延秉昊)·송세호(宋世浩) 등이 조직한 청년외교단(靑年外交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해서 임시정부로 보내고 국내에 「외교시보(外交時報)」를 배포했다. 1919년 10월 춘천(春川)에서 일제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1920년 1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1년 6개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12. 11 경성지방법원)
- 고등경찰요사 19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25·166·167·2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5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39면
- 판결문(1920. 1. 21 경성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2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352·4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