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등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개되었다. 전해산은 같은 해 겨울 이석용(李錫庸)과 함께 전라북도 남원(南原)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 7월 29일에는 의병장이 되어 의진을 다시 편성하고 일본에 의병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던 변영서(邊永瑞)·박기춘(朴基春) 등을 총살하였다. 9월에는 조경환의진(曺京煥義陳)과 연합의병을 구성하였다. 이후 순창(淳昌)·담양(潭陽) 등을 거쳐 광주(光州)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나주·부안(扶安)·영광(靈光)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노연숙은 전해산의진의 십장으로 1909년 2월 9일 나주군 명곡(明谷)에서, 2월 20일에는 나주군 검손(檢巽)에서 활동하다가 1910년 5월 체포되었다.
1910년 6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재물협편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5월중 폭도상황(暴徒狀況) 월보月報(1910. 5)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집 442~443, 454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1989) 제18권(의병편XI) 3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