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남 홍성(洪城) 사람이다.
민종식(閔宗植) 의진의 소모관(召募官)으로 충남 홍주(洪州)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민종식은 경기도 여주(驪州) 출신으로 1882년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을 지냈다. 민종식은 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국권회복을 위하여 처음 충남 정산(定山)군 천장리(天庄里)를 거점으로 동지를 규합하고, 군수품을 준비하는 등 의병 봉기를 준비하였다. 그런 다음 1906년 4월 처남되는 이용규(李容珪)와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김광우(金光祐)·조희수(趙羲洙)·정재호(鄭在鎬)·황영수(黃英秀)·이상구(李相龜) 등과 함께 충청도 홍산(鴻山)에서 거의하였다.
이만직은 이 때 민종식의 거의계획에 참여하여 의병 소모관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민종식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같은 해 5월 19일 홍주성을 탈환하는데 앞장섰다. 이후 일본군 수비대와 홍주성에서 10여 일 동안의 공방전을 전개하여 적군 3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화력 및 병력의 열세로 5월 31일 홍주성이 함락되자, 그는 민종식 의병장과 함께 후일을 기약하고 탈출하여 같은 해 9월 곽한일(郭韓一)·박윤식(朴潤植)·김덕진(金德鎭)·황영수(黃英秀)·정회규(鄭會圭)·박창로(朴昌魯) 등과 재차 거사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마저 친일 매국단체인 일진회(一進會) 회원에게 누설되어 주동자들이 붙잡히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술국치(庚戌國恥) 후인 1916년 7월 이용규·윤병일(尹炳日) 등과 함께 다시 거사를 준비하면서, 박동신(朴東臣)에게 군자금을 요청했다가 그의 배신으로 1917년 4월 9일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는 전남 지도(智島)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357·363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8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2집 317·319·327·347∼3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