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이범윤(李範允) 의진에 가담하여 노령 및 함경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정해식은 배일사상을 품고 1907년 음력 7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이범윤 의진에 투신하였다. 당시 이범윤 의병장은 연추(煙秋)를 중심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고자 하여 애국 청년들을 모집하였다.
정해식은 1910년 음력 7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안도현(安圖縣) 백하(白河) 서대령(西大嶺) 탕하(湯河)에 거주하는 차도선(車道善) 의병장을 방문하여 조선 내지의 상황을 정찰하여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차도선은 함남 갑산(甲山) 출신으로 구한국 진위대의 하사로 복무하던 중 1907년 군대해산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지자 홍범도와 같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일원에서 친일면장 주도익(朱道翼)을 처단하는 한편 수차례에 걸쳐 일본군대와 유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홍범도는 노령 방면으로 차도선은 청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노령에서 두 의병장이 합류하였고, 차도선은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범윤 등과 더불어 활동하면서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이에 정해식은 1911년 음력 4월부터 인삼행상으로 가장하고 함남 갑산군(甲山郡)·삼수군(三水郡) 및 함북 길주군(吉州郡)·명천군(明川郡) 등을 편력하면서 경찰 및 군대의 배치 상황, 현지인의 동향 등을 정찰하여 차도선에게 2차례에 걸쳐 보고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같은 해 12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각 군을 편력하면서 정찰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1912년 7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이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191∼1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