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황부주는 경북 문경 출신으로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의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이강년은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창의하여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에 참가하여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3월 재봉기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북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8년 8월 한국 군대 해산 이후 제천으로 들어가 민긍호부대(閔肯鎬部隊)와 합류하여 의병진을 재편성하였고, 8월 19일 주천으로 이동하여 40여 의병진의 추대로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이 되었다. 8월 23일 충주성 공략에 실패한 이강년은 단양·풍기 등을 거쳐 9월 7일부터 9월 14일까지 문경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후, 동년 5월 강원도를 거쳐 경북 봉화 지역으로 진출한 이강년은 동년 5월 18일부터 전개된 서벽전투(西碧戰鬪)·내성전투(乃城戰鬪)·재산전투(才山戰鬪) 등을 치루며 대일항전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908년 7월 2일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체포된 이강년은 평리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10월 12일 순국하였다.
황부주는 이강년의진이 1907년 9월 7일부터 9월 14일까지 문경 지역에서 활동할 때, 후군장(後軍將) 신태원(申泰元) 휘하에서 적성전투(赤城戰鬪)에 참가하였다가 부상을 입고 은거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史(金承學, 1965) 下 3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집 301면
- 雲崗先生倡義日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