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1월 경기도 적성군(積城郡)과 양주군(楊州郡)에서 윤인순의진(尹仁淳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기도 양주군 출신의 윤인순은 1907년 일제가 군대 해산을 강행하자 양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1907년 말에 허위의진(許蔿義陣)에 합류하여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6월에 허위가 체포되자 윤인순은 30~40명 소규모 단위로 하여 의병 활동을 계속하였다. 1909년에는 이은찬(李殷瓚)ㆍ강기동(姜基東)ㆍ연기우(延基羽) 등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파주(坡州)ㆍ포천(抱川)ㆍ영평(永平)ㆍ연천(漣川)ㆍ삭령(朔寧)ㆍ금천(金川)ㆍ배천(白川)ㆍ연안(延安)을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도서지방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3월 17일 양주 북방 4리에서 삭령수비대(朔寧守備隊)와 전투 중 부하 16명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홍준성은 윤인순의진에 들어가 20여 명의 의병과 함께 1909년 음력 1월 5~6일경 적성군 남면(南面), 양주군 현내면(縣內面) 등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려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4월 27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미득재(强盜未得財)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으로 형의 집행을 면제받고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09. 4. 2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91~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