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출신으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의 김필수(金必洙) 등과 함 께 장수군 진전면(鎭田面)의 진전면사무소(鎭田面事務所)에 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8월 26일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에 추대된 임실 출신의 유생 이석용은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었다.
이석용은 1907 년 9월 성재(省齋)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 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동년 9월 12일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습격하 였고, 한편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부대(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 하기도 하였다.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에서 일본군에 패하여 의병진을 해산했다.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되어 1914년 1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받아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한일성은 1912년 11월 22일 이석용의진에서 김필수(金必洙), 박보국(朴甫局), 정남쇠(丁南釗), 홍윤무(洪允武), 박동환(朴東煥), 김상신(金相臣) 등과 장수군 진전면(鎭田面)의 진전면사무소(鎭田面事務所)에 공격하였고 공전영수원 이용구 (李龍九)와 육동기(陸東基), 면서기 한용신(韓容信), 면장 이순영(李順榮)에게 군 자금을 모집하였다.
동년 12월 17일 밤 이석용 등과 함께 임실군 남면 야당리 (野塘里)의 강정수(姜正秀)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하다 체 포되었다.
강도상인(强盜傷人) 및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13년 2월 2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곧이어 공소하여 1913년 3월 29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全州支廳:1913. 2. 22)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3.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