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1월부터 3월 사이에 전북 임실(任實)ㆍ남원군(南原郡) 일대에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이석용 의병장은 흔히 이학사(李學士)로 알려진 전북을 대표하는 한말 의병장이다. 그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음력 9월 전북 진안군(鎭安郡) 마이산(馬耳山)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래 1909년 초반까지 전북 임실ㆍ남원ㆍ진안ㆍ장수군(長水郡) 등 전북 산간지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력 1월 15일 이석용의진에 참여하여 이석용을 비롯한 3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약 1년간 임실ㆍ남원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2월 상순 전북 임실군 목리(牧里)의 민가에 들어가 "우리는 의병인 바 군용금을 차출하라"고 말하며 엽전 40냥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3월에도 임실군 구고면(九皐面) 평지리(平地里) 두 곳에서 각각 엽전 40냥을 거두었다. 같은 달 20일 임실군 덕치면(德峙面) 가곡리(柯谷里)의 민가에서 같은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폭동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3일 이른바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 징역 3년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13년 2월 7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3. 9)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917~9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