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진영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한승교(韓承敎)의 권유를 받고 1911년 4월 중순 홍범도(洪範圖)와 차도선(車道善) 의진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홍범도는 평남 평양(平壤)의 진위대 병사 출신으로 함경도로 이주하여 포수와 광부로 있던 중, 1907년 11월 차도선(車道善)·태양욱(太陽郁)·송상봉(宋相鳳)·허근(許瑾) 등과 더불어 산포수를 규합하여 의병을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함경도 삼수(三水)·갑산(甲山) 일대를 중심으로 반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부일배를 처단하던 이 시기의 대표적 의병장이다.
차도선은 함남 갑산(甲山) 출신으로 대한제국군 진위대의 하사로 복무하던 중,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홍범도와 같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일원에서 친일면장 주도익(朱道翼)을 살해하는 한편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군대와 유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 홍범도는 노령 방면으로, 차도선은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노령에서 두 의병장이 합류하였고, 차도선은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범윤(李範允) 의병장 등과 더불어 활동하면서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한두찬은 1910년 12월부터 1912년 중반까지 함남 갑산에서 중국 간도(間島)에 있는 이들 의병부대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는 한편 같은 군 혜산진(惠山鎭)에 있는 일본군 헌병대와 수비대의 인원 및 배치상황을 파악,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2년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