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5월과 6월 사이 강원도 영월군(寧越郡)ㆍ평창군(平昌郡) 등지에서 군자금 등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한 이후 의병들은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일제에 무력으로 저항하였다.
최봉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美灘面)과 대화면(大和面), 원주군(原州郡) 문막리(文幕里)와 충북 지역에서도 활동하였다. 1909년 음력 5월 20일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水周面) 하일리(夏日里)에서 현금 2원을 모집하였다. 1909년 음력 6월에는 황순팔(黃順八)과 함께 정선군(旌善郡) 서면(西面) 만지산리(萬支山里)에서 현금 50전, 백목면(白木綿)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황순팔은 1909년 5월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美灘面)ㆍ대화면(大和面)에서 활동하였으며, 이성덕의진(李聖德義陣)에 들어가 군수품을 모집하고, 일본군 수비대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2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3년 6월, 1914년 5월 24일 칙령 제104호에 의해 징역 2년 9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12. 5. 23)
- 暴徒來襲의 件(1910. 4. 30), 暴徒來襲의 件(1910. 5. 6)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