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장단(長端) 출신으로 1908년 전복규의진(全福圭義陣)에 가담하여 1908년 경기도 연천(漣川)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복규는 경기도 연천 출신으로 대한제국의 군대해산 이후 1907년 8월부터 1909년 9월까지 의병장 김수민(金秀敏)과 참모장 허위(許蔿)가 지휘하는 의병부대에 좌익장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총기를 휴대하고 경기도 연천, 마전(麻田), 장단군 일원에서 100명 내외의 의병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1909년 음력 2월 마전헌병분견소 공격, 음력 3월에는 구화장(九化場) 헌병분견소 공격, 그리고 동년 9월 마전군 북면(北面), 동년 10월 마전군 동면(東面) 등지에서 헌병대와 교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서 군수전 1400원과 군량으로 1908년 수확한 쌀의 3분의 1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최춘식은 전복규 휘하에서 한창열(韓昌烈), 이용현(李容鉉), 권중삼(權重三) 등과 함께 경기도 연천, 파주, 교하 일원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소위 내란죄(內亂罪)로 기소되어 1908년 9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고, 이에 상고하여 1908년 10월 16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경성공소원으로 환송, 1908년 11월 13일 경성공소원에서 종신 징역을 받고, 다시 상고하여 1908년 12월 5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종신징역에 처해져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控訴院:1908. 9. 22)·判決文(大審院:1908.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