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최영서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고광순의진(高光洵義陣)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고광순은 전남 창평(昌平) 출신으로 호는 녹천(鹿川), 본관은 장흥(長興), 기산도(奇山度)의 사위이다. 1896년 2월 11일 기우만(奇宇萬) 등과 나주(羅州)에서 창의한 바 있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순창(淳昌)에서 창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려 했으나, 최익현은 이미 패전하여 서울로 압송된 뒤였다. 1907년 1월 창평 저산(猪山)에서 고제량(高濟亮)·고광훈(高光薰)·고광채(高光彩) 등과 창의하였다. 고광순은 우선 남원의 양한규(梁漢圭)의진과 남원성으로 진격하여 관군과 접전하였으나 양한규의 전사로 퇴진하였다. 1907년 5월에는 능주(綾州), 8월에는 동복(同福)을 공략하였다. 그 뒤 김동신(金東臣)과 연합작전을 구상하고, 동년 8월 구례 연곡사(燕谷寺)로 가서 화개동(花開洞)과 문수암(文殊庵) 일대를 거점으로 군사의 모집과 훈련을 시키고 일본군과 전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동년 9월 11일 적의 기습으로 고광순, 고제량 등이 전사하였다.
최영서는 1907년 고광순의진에 가담하여 곡성·순천·동복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12월 21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집 281·286~288면, 별집 제1권 697면
- 判決文(大邱控訴院:1909.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