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2096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崔奭在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1907년 음력(陰曆) 6월~1908.1월(음력(陰曆)) 군사 5백명 가량을 소집하여 원수부(元帥府) 군물감독장(軍物監督將)으로서 경기(京畿), 강원(江原) 등지에서 일본군과 30여회 교전(交戰)하는 등의 활동(活動)을 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유형(流刑) 15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강원도 양구(楊口)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경기·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 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최석재는 이같은 시기에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거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7년 음력 6월말부터 음력 9월까지 의병 500여 명을 소집하여 '원수부(元帥府) 군물감독장(軍物監督將)'이라 칭하고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국권을 회복하고 동포를 구호한다"는 기치 아래 부하를 인솔하고, 같은 해 음력 7월부터 1908년 음력 정월까지 강원·경기도 등지에서 일본군과 30여 회나 교전하는 등 활발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9월 5일 경성 지방재판소에서 유형 1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24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최석재 - 강원 양구 후기의병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내란죄 유(流) 15년 경성지방재판소 1908-09-05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최석재(관리번호:12096)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