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가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개되었다. 김경삼 의병장은 1909년 2월 이석용의진에 참여하여 전라북도 임실군·태인군(泰仁郡)·장수군(長水郡)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최봉갑은 1909년 2월 24일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德峙面)에 거주하는 김경삼의진에 속하여 활동하였다. 27일 오전 2시경부터 28일에 걸쳐 김경삼 이하 6명의 의병과 함께 전라북도 임실군 오지면(吾支面) 화촌리(花村里) 이윤식(李允息)의 집에 들어가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3월 1일 오전 4시 경 남면(南面) 주천(酒泉) 이태우(李台宇)의 집에 들어가 군수품을 모집하였으며, 오후 10시 목동(木洞) 허간(許幹) 집에 들어가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3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징역을 받았으나,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하여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고, 1915년 징역 7년 9월 18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3. 2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584~5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