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
민용호(閔龍鎬) 의진의 좌군장(左軍將)으로 활동하다가, 유인석(柳麟錫) 의진을 따라 삼수(三水)·갑산(甲山)에서 활동하였다.
최문환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變報)를 전해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이어서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그 분노는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춘천(春川)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민용호 의진에 동참하였는데, 민용호 의진은 1896년 1월 강릉부 관할 9군을 총괄한 영동9군창의소(嶺東9郡倡義所)를 설치하고 강릉부 경무관 고준석(高俊錫)을 처단하면서 그 위세를 떨쳤다. 일본인 거류지인 원산(元山)으로 진군하는 동안 민용호 의진에는 양양·고성·통천에서 의병이 모였고, 또 횡성·춘천·회양 등지의 의병도 몰려와서 의병의 기세는 더욱 높아갔다. 이즈음 민용호 의진은 원산진격을 계획하던 중 선평(仙坪) 전투에서 실패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의병진은 영서지방으로 근거를 옮겨 유격전으로 항전을 계속하였고, 이 때 최문환은 민용호의 좌군장으로 여러 전투를 치렀다.
이후 민용호 의병장은 좌군장 최문환 등과 함께 다시 방향을 바꾸어 함경도 쪽으로 향하여 9월 초에 고원(高原)·영흥(永興)·정평(定平)을 거쳐 중순에는 함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관찰사 서리 김택수를 몰아내고 함흥부를 차지하였는데 이 때 의병진의 병력은 총기를 휴대한 군사 150명을 합하여 2백여 명이었다. 그 뒤 민용호 의진도 해산하고 일부는 국내에서 더 이상 항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만주로 이동하였다. 그래서 최문환도 그해 9월 말 유인석이 유진하고 있는 육도구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동지 박제규(朴齊逵)·홍덕표(洪德杓) 등과 국내진공을 목표로 의병의 재기를 도모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1897년 6월 국내에 진입하여 삼수·갑산 등지의 적을 습격하려고 강을 건너던 중 밀정인 이용태(李容泰)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83면
- 호서의병사적(이구영편역, 1993) 100·102·218·23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