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진(義陣) : 의병의 군진. 의병 부대를 배치한 것.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최덕중은 1909년 음력 4월부터 6월까지 유종여의진(柳琮汝義陣)에 참여하여 순창·무주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유종여는 유생으로 정읍에서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하고, 1907년 11월경 창의하여 1909년 5월까지 전북 순창·태인, 전남 담양·장성·광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던 의병장이다. 유종여는 1908년 음력 2월 말부터 전북 순창 및 장성 일대에서 부하 60명과 활동하였으며, 1908년 11월 10일부터 1909년 음력 2월 10일까지 순창·담양·광주 일대에서 장순흥(張順興) 등과 총기 20정 및 칼을 휴대한 의병 30여 명을 지휘하여 식료품·짚신 등의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5월 8일 순창군 쌍치면(雙置面) 학선리(鶴仙里) 오룡촌(五龍村)에서 전사하였다.
최덕중은 1909년 음력 4월경 전라남북도의 접경지대에서 활동하던 유종여의진에 가담하였다. 최덕중은 4월 15일 유종여 등 5명과 함께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화암리(花岩里)에서 이장 지영석(池永錫)으로부터 군자금 40냥을 모집하였으며, 같은 달 동료 8명과 함께 팔등면(八等面) 입석리(立石里)에서 이장 최윤도(崔允道)로부터 군자금 115냥을 모집하였다. 1909년 6월 20일 동료 2명과 함께 우부면(右部面) 백야치(白也峙)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순창 주재 일본인 순사 2명과 한인 순사 2명에 의해 체포되었고, 동료 제봉렬(諸奉烈)과 양수공(梁秀共)은 탈출하였다.
이로 인해 최덕중은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홍영기, 2004) 56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616~617면
- 暴徒에 關한 件(1909. 6. 28) 暴徒에 關한 編冊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1909.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