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11월 전북 고창(高敞)ㆍ흥덕(興德)ㆍ부안군(扶安郡) 등지에서 박도경의진(朴道京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북 고창 출신의 박도경 의병장은 1907년 후반 기삼연이 주도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포군장(砲軍將)으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8년 2월 기삼연 의병장이 순국한 후 김공삼(金公三)ㆍ김영엽(金永燁)ㆍ전해산(全海山) 의병장 등과 긴밀하게 연대하였다. 특히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까닭에 '박포대(朴砲大)'로 널리 알려졌다.
1909년 2월 1일 부하 박양일(朴兩日)이 일경에 체포되어 공술(供述)한 바에 의하면, 박도경의진은 부하 110명, 선봉장 이도운(李道云), 중군장 손도연(孫道演), 도십장(都什長) 구연역(具連譯)과 좌ㆍ우익장 및 참모를 거느렸다고 한다. 이들은 전북 고창ㆍ부안군, 전남 영광군(靈光郡) 등 전라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11월 23일부터 약 10일간 박도경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2백여 명과 함께 전북 고창ㆍ흥덕ㆍ부안군 내 여러 마을에서 활동하였다. 24일에도 1908년 고창군 내 민가에 들어가 군자금으로 엽전 1백 냥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 징역 3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3. 2)
- 全北義兵史(全北鄕土文化硏究會, 1992) 5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9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