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고종황제의 특사를 문제 삼아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황제를 즉위시킨 후 정미7조약을 강제하여 국권을 강탈하였다. 일본 통감부는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 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은 자결로 저항하거나 민족적 이해에 눈을 뜬 애국적 군대로 탈바꿈하여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촉발된 후기의병은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무장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석유 장사에 종사하고 있던 차흥준은 1907년 후기의병기에 최태평이 결성한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음력 10월경 의병 1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양근군 상심리(上心里)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차흥준은 1909년 6월 10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재판소:1909. 6. 1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