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북 제천(堤川) 사람이다.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충청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그의 아버지 주용규는 원래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생으로 기개있는 선비였다. 주용구는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를 전해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이어서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그 분노는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이필희(李弼熙)·서상렬(徐相烈)·신지수(申芝秀)·이범직(李範稷)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1월 이춘영(李春永) 등과 충북 제천(堤川)에 들어가게 되니 제천의병의 성세는 크게 떨치게 되었다. 그 후 제천의병은 충주성을 점령한 후 일본군을 맞아 싸우다가 중군장 이춘영이 전사하여 형세가 심상치 않자 대장소에 있던 주용규는 창을 들고 나와, "우리 도(道)의 존몰(存沒)과 국가의 흥망이 이번 한 싸움이 있다. 이번 싸움에 이기지 못하여 우리 군사가 기운이 저상(沮喪)된다면 앞으로의 강대한 적을 어찌하겠느냐"며 남문 문루에 올라 싸움을 독려하였다. 이에 분발한 군사들은 더욱 기운을 내 전투를 하였고, 저녁 무렵 싸움 독려에만 경황이 없던 주용구는 그만 적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부친의 순국 소식을 접한 주현구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상복을 벗고 그해 5월 6일 유인석 의진에 참전하였다. 그는 유인석 의병장의 명령을 받아 6월 12일 전사한 소토장(召討將) 서상렬(徐相烈)의 시체를 찾아 제천에서 반장(返葬)하고자 하였으나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그 후 유인석 의진이 서북행을 단행함에 따라 그도 동행하였으나 울분과 원한으로 병을 얻어 부득이 집으로 돌아와 바로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제천군지(제천군지편찬위원회, 1969) 3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166·477·505·53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