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가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개되었다.
김영백은 1907년 10월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에서 약 1,000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장성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8년 음력 3월 4일에 정읍군(井邑郡) 단곡리(丹谷里)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수비대의 기병을 기습 공격하였으며, 7월에는 흥덕군 소속 수비대 보병과 전투를 벌였다. 9월 21일 방장산(方丈山) 산록 백계동(白溪洞)에서 수비대의 기병·헌병·순사대와 전투를 벌였으며, 10월 상순 장성군 북이면 신기리(新基里)에서 11월 상순에는 오현(鰲峴)에서 일본 헌병과 전투를 벌였다.
조재학은 1908년 음력 2월 중에 김영백의진에 들어가 5명의 의병과 함께 전라북도 순창군 상치등면(上置等面) 북실리(北實里) 김모(金某)의 집에 들어가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사기점리(砂器店里) 김모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10. 25)
- 폭도(暴徒) 대토벌(大討伐)의 건(1909. 11. 9)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
- 폭도수색(暴徒搜索)의 건(1909. 10. 26) 폭도에 관한 편책
- 폭도수색의 건(전북 관찰사:1909. 10. 22) 폭도에 관한 편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