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2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ㆍ용인군(龍仁郡) 등에서 이익삼의진(李益三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제국 하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이익삼 의병장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8월부터 용인을 근거지로 삼아 농민 출신 정기인(鄭基仁) 등 부하 30~40명과 함께 광주ㆍ죽산(竹山)ㆍ양성(陽城) 등지를 넘나들며 의병 활동을 하였다. 이익삼은 1908년 1월 부하를 해산하고 일시 귀순했지만, 1908년 5월 다시 의병에 투신하여 40명 안팎의 부하와 함께 귀순을 권고하는 친일세력 및 자위단장 등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다 1909년 6월 2일 용인에서 체포되었다.
1908년 음력 2월경 이익삼의진에 들어가 의병 22명과 함께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突馬面) 수반리(樹盤里)에서 25원, 역동(驛洞)에서 백미 3섬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30일에는 용인군 포곡면(蒲谷面) 소운동(巢雲洞)에서 백미 1섬을 모집하는 등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9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10. 3. 9)
- 每日申報(1912. 11.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