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895년 12월부터 1896년 6월까지 경기도, 경북 일대에서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의 도총(都摠)과 선봉장(先鋒將)으로 일본군 및 관군(官軍)과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경북 의성군(義城郡) 교촌(校村) 출신의 김하락은 1895년 12월부터 1896년 8월 순절할 때까지 전기 의병전쟁에서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895년 12월 김하락은 이종제(姨從弟) 조성학, 동지 구연영(具然英)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조성학은 김하락의진의 도총으로서 1895년 12월 17일 이천군(利川郡)에서 김하락과 함께 포군 및 의병을 모집하여, 백현(魄峴)과 이현(梨峴) 등지에서 일본군수비대와 격전을 벌였다. 이후 귀향하여 있던 중, 1896년 3월 3일 김하락이 다시 거의할 것을 권유하자 이를 수락하고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4월 이후 청송(靑松)에 이르러서는 30여 명의 군사만 남아있었다. 6월 4일 김하락과 함께 영덕(盈德) 관아를 공격하였으나, 폭우가 쏟아지면서 의병진은 모두 흩어지고 남은 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다. 김하락은 포탄을 무릅쓰고 달려가던 중 탄환 두 발을 맞은 후 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하였으며, 뒤를 따르던 군졸들도 함께 물에 빠져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1집 584~588, 596~605, 609, 614~61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160, 161, 284~288면 ㆍ趙性學將軍征討日記(연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