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3월과 4월 사이에 전북 임실군(任實郡)에서 최산흥의진(崔山興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등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북 순창군(淳昌郡) 출신의 최산흥 의병장은 1906년 10월부터 이경춘의진(李慶春義陣)의 도십장(都什長)으로 의병에 참여하였다. 1907년 후반 이래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의 검찰(檢察)과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의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다 독립하여 의진을 편성하였다. 1909년 이후 전북 순창ㆍ임실ㆍ남원(南原)ㆍ정읍군(井邑郡)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음력 3월 30일 최산흥의진의 의병 10여 명과 함께 전북 임실군 용광촌(龍光村)의 민가에 들어가 "우리는 의병인 바 금전을 차출하라"고 요구하여 엽전 30냥과 마포(麻布) 6필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4월 1일에도 같은 마을의 민가에 들어가 엽전 15냥, 마포 3필을 모집하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9월 30일 전북 순창군 회계남면(廻溪南面) 죽림촌(竹林村)에서 이국찬(李國贊)ㆍ김태일(金太一) 등과 함께 의병 밀고자 이용안(李龍安)의 처단에 가담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15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1. 15)
- 判決文(高等法院 : 1910. 4.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32, 881~8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