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용규는 1912년 9월 신문 기사 내용을 통해 일본 내에서 민권당의 약진으로 정부와의 알력이 일어나고 일본정부 역시 재정적 곤란으로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사실을 알고 국내에서 세력을 결집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려 계획하였다.
이러한 계획 하에 전용규와 동지들은 수시로 회합하고 지방유세 등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였다. 이때 1912년 임병찬(林秉瓚)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의 밀칙을 받고 비밀리에 동지를 규합하여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다. 임병찬은 호남지방의 의병과 유생을 규합하고자 아들 임응철(林應喆)을 서울에 보내 전용규,곽한일,이인순(李寅淳) 등과 의논하게 하였고, 곧 조직을 전국 규모로 확대하였다. 그 결과 안병찬은 전라남북도 순무총장 겸 사령장관에 임명되었고, 전용규는 곽한일과 더불어 대한독립의군부의 총대표로 선임되었다.
대한독립의군부의 활동 목표는 일본 내각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등에게 국권반환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 한국 강점의 부당성을 깨우치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1913년 5월 국권반환요구서를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을 통해 발송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5월 23일 동지 김창식(金昌植)이 체포되어 조직이 발각되었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전용규를 비롯한 임병찬 등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원 다수가 체포되었다. 이후 1917년 재거의(再擧義)를 도모하다 거주 제한을 당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5. 3. 13)
- 신한민보(1913. 8. 2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348면, 제9집 477~480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3. 8.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173~174면, 제5권 158면
- 每日新報(1913. 7. 6, 8. 7, 1915. 3. 9, 3. 16, 9. 2)
- 勸業新聞(1913. 7. 20)
- 國民報(1913. 11. 8)
- 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 경찰부, 1934) 178면
- 遯軒遺稿(擧義日記)(林秉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