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운룡은 경기도 양주(楊州) 출신으로 1907년 음력 7월 경 권득수의진(權得洙義陣)에 가담하여 경기도 양주,포천(抱川)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1909년 음력 1월 경 윤인순의진(尹仁順義陣)에 가담하여 경기도 포천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9년 5월 경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권득수는 경기도 양주,양근(楊根),이천(利川),지평(砥平) 등지에서 의병 200여 명을 모집하여 활동하였으며, 윤인순은 1908년 3월 경 의병장 허위(許蔿)가 결성한 관동창의원수부(關東倡義元帥府)의 우군장(右軍將)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해산병 출신의 선봉장 김종운, 참모장 홍원유, 부장 노재훈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여 부하 30~40명의 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주로 양주를 근거지로 파주(坡州),적성(赤城),포천,영평(永平) 등지에서 일본군과 친일관리, 그리고 일진회 회원을 처단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1909년에는 이은찬(李殷瓚),정용대(鄭用大),강기동(姜基東),연기우(延基羽) 등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경기도 양주,파주,포천,영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17일 양주에서 삭령수비대(朔寧守備隊)와 전투 중 부하 16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운룡은 1907년 음력 7월 권득수의진에 들어가 경기도 양주,포천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1909년 음력 1월 21일 윤인순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포천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5월 11일 경기지방재판소(京畿地方裁判所)에서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畿地方裁判所:1909. 5. 11)
- 判決文(京畿地方裁判所:1909. 5. 1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92~9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92~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