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1813
성명
한자 全木基
이명 全睦基, 全德元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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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6 훈격 애족장
1907년 9월에 김연성 의진(金演性義陣)에 가담하여 무장한 40여명의 군사들과 함께 경기도(京畿道) 양주(楊州), 적성군(積城郡) 등지에서 활동(活動)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유형(流刑)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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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화폐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더니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완전 장악한 후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과 같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새로이 많은 인사들이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또한 일제 뿐 아니라 평소 일제의 정책에 부화뇌동하던 친일관료와 일제에 기생하며 민족적 과제를 외면하던 부일배 역시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의병활동 역시 일제와의 직접적인 전투 뿐 아니라 군자금 모집, 친일관료 응징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전목기는 국권회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1907년 9월 김연성(金演性) 의진에 입진하여 40여명의 군사들과 함께 양주, 적성(積城) 등지에서 대일항쟁을 전개하다가 일군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1908년 10월 2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으로 유형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6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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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전목기 전덕원(全德元)·전목기(全睦基) 경기 양주 후기의병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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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내란죄 유(流) 3년 경성지방재판소 1908-10-27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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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기도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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