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용천(龍川) 사람이다.
1904년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이 국내에서 의병 재기 활동을 할 때 평북 용천에서 종유계(宗儒契)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4월 고종의 의병 해산조칙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유림의병이 해진(解陣)을 하였으며, 1895년 봉기하였던 유인석은 국내에서 지속적인 의병활동이 어렵게 되자 만주로 이동하여 의병재기를 추진하였다. 만주에 망명해 있던 유인석 의병장은 일제가 러일전쟁을 일으킬 때 이 시기를 국가의 위기로 인식하고, 그 전과는 다른 방도로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유인석은 국권회복을 위한 거국적 의병 봉기를 위한 전제로서 계(契)의 조직을 추진하였다. 유인석의 이러한 거의론(擧義論)에 따라 1904년 12월 평안북도에서 의병봉기가 추진되었다. 즉 유인석은 평안도·황해도·함경도 등 각도의 유생과 지사들을 연락하여 재기를 도모하고, 개천(价川)의 숭화재(崇華齋)를 총본영으로 삼고, 각 지역의 책임자를 임명하였다. 이 때 장세정은 용천군을 담당하였으며, 그와 백삼규(白三圭) 부자(父子), 조승준(趙乘俊)·전덕원(全德元)·박치익(朴治翼)·김기한(金起漢)·박양섭(朴陽燮)·박승연(朴勝衍)·김성빈(金成彬) 등이 각 군과 읍을 연결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장세정은 이들과 함께 평안도 30여 군에서 종유계(宗儒契)를 설립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의병봉기를 추진하던 중 일제에 의해 조직이 발각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9면
- 의암문하동문록
- 용천지(정규순, 1968) 15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75면
- 황성신문(1904.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