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3월에서 음력 5월 사이 충북 영동군(永同郡), 충남 금산군(錦山郡)에서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문태수 의병장은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을 만나 거의(擧義) 문제를 논의한 후 1906년 9월 중순경부터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1908년 2월부터 1909년 5월 사이에 전북 무주(茂朱)ㆍ용담군(龍潭郡), 경북 지례군(知禮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8월 중순경 의병 수십 명을 인솔하고 충북 영동군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10~12월 사이에는 무주군을 근거로 영동ㆍ금산군 등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1911년 8월 17일 일본군에 체포된 후, 옥중 순국하였다.
장선군은 문태수의 부하로서 5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충북 영동군, 충남 금산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음력 3월 25일 충북 영동군 양남면(陽南面) 필력촌(筆力村) 용산리(龍山里)에서 "우리는 의병(義兵)이니 군용금(軍用金)을 차출하라"고 하며 30엔(円)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3월 28일에는 전북 금산군 부북면(富北面) 가마곡리(可馬谷里)에서 엽전 130냥을 모집하였다. 이어 음력 3월 30일과 음력 5월 5일에도 금산군 부동면(富東面) 어재리(於在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2.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