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1765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林行叔
이명 任行叔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족장
1907년 11월-1909년 경기(京畿) 여주군(驪州郡) 일대에서 의병장(義兵將)으로 의병(義兵) 1백 여명을 인솔하고 여주경찰서(驪州警察署)일경(日警)처단하는 등의 활동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기도 여주(驪州)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경기도 여주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한국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 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임행숙은 이같은 시기에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00여 명의 부하 의병을 이끌고 1907년부터 1909년까지 경기도 여주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1907년 11월 1일 여주군 흥곡면(興谷面) 충신동(忠信洞) 산속에서 여주경찰서 소속 일본인 순사 도변권태랑(度邊卷太郞)·복도영태랑(福島榮太郞)·족전장(足田章) 및 부일협력자 김한영(金漢永) 등 4명을 처단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15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3집 506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임행숙 임행숙(任行叔) 경기 여주(驪州) 후기의병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임행숙(관리번호:11765)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