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4월 경북 영덕(盈德)ㆍ청하(淸河) 일대에서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6년 3월 13일 영덕에서 창의한 신돌석은 경북과 강원 등 동해안 일대에서 활동을 하였다. 신돌석은 일월산(日月山)ㆍ백암산(白巖山)ㆍ대둔산(大遯山)ㆍ동대산(東大山)을 중심으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 구한국군의 합세로 군세를 크게 떨쳐 영양(英陽)ㆍ진보(眞寶)ㆍ청송(靑松)ㆍ경주(慶州)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후 평해(平海)ㆍ영양ㆍ울진(蔚珍)ㆍ봉화(奉化)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임한조는 1907년 4월 신돌석의진에 참여하였다. 4월 12일 신돌석 휘하의 의병 100여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영덕군 외남면(外南面) 하화동(下禾洞)에서, 4월 13일 청하군 청하읍(淸河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 뒤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08년 10월 이 사실을 탐지한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1908년 11월 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8년, 1914년 칙령 제10호에 의해 징역 6년 9월 7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8. 11. 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4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