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1909년 광주에서 김동수(金東洙) 의진의 도포사(都砲士)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동수 의병장은 1907년 이원오(李元五)·조경환(曺京煥)·양상기(梁相基)·김현길(金玄吉) 등과 함께 광주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08년 양진여(梁振汝) 의진과 합진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2월 양진여 의병장의 지휘아래 전남 광주군 갑마보(甲馬保)면의 친일 면장(面長)집에 들어가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1909년 1월 12일에도 갑마보면 복용리(伏龍里)에서, 같은 해 2월 하순에는 광주군 오치(梧峙)면에서, 3월 15에는 광주군 삼취지(三取旨) 등에서 군수품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1일과 2일에는 순창(淳昌)군 지곡(芝谷)동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수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후 김동수 의병장은 양진여 의진에서 분진(分陣)하여 6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남 화순(和順)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대일 항전을 계속하여 갔다. 같은 해 5월 5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광주군 덕산면(德山面)에서 일본군 헌병대 광주분견소의 적군들과 접전을 벌였고, 광주군 갑마보면 본촌(本村)에서 광주경찰서의 일본인 경찰대와 교전하였다. 이 때 김동수 의병장은 부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광주 뿐만 아니라 담양(潭陽)·장성(長城)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때 임윤팔은 김동수 의병부대의 주력을 이끌면서 일본군과의 격전에 선봉이 되었다. 그는 김동수의진의 포군들을 지휘하여 전남 일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을 격퇴하였고, 친일면장 처단에도 앞장을 섰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활동 중 일경에 체포되어 1909년 11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內亂) 및 모살(謀殺)로 사형을 받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91∼89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