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이석용(李錫庸) 의진에 참가하여 전북 임실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임국현은 1907년에 들어와 일제가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시키는 것을 국망사태로 인식하고 통분해 하고 있었다. 이에 그는 국권회복을 위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 전북 일대에서 일본군과 대항하여 의병전쟁을 벌이고 있던 이석용 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석용 부대는 진안(鎭安) 석전리(石田里)에서 2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기병하여, 1907년 9월 13일 진안읍을 점령했고, 11월 17일에는 장수를 공략하여 일본군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석용 부대를 따라 임실군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친일적 행위를 일삼고 있는 일진회(一進會) 회원 처단과 자위단장, 친일관료 등 수십 명을 처단하였다. 그밖에 일제의 경제적 침탈의 앞잡이인 일본인 상인 다수를 처단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