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북 부안(扶安) 출신으로 1908년 김영백의진(金永伯義陣)에 소속되어 전북 흥덕(興德)과 정읍(井邑), 전남 장성(長城)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병장 김영백은 1907년 10월경 전남 장성에서 창의하여 장성을 중심으로 광주, 고부, 정읍, 태인, 부안, 흥덕, 고창, 순창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력 3월 4일에는 정읍 단곡리(丹谷里)에 주둔 중인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였으며, 7월에는 흥덕(興德) 주둔 수비대 보병과 전투를 벌였다. 9월 21일 방장산(方丈山) 산록 백계동(白溪洞)에서 수비대 기병, 헌병, 순사의일본군 연합부대와 교전하였다. 10월 장성군 북이면 신기리(新基里)에서 교전하였고, 11월 상순에는 장성군 오현(鷔峴)에서 헌병과 교전하였다.
1909년 1월 말경에는 장성군 북이면 상곡리(上谷里), 2월 중순에는 북일면 동산리(東山里), 2월 말에는 흥덕군 세곡리(細谷里), 4월 11일에는 일동면 구수교(九水橋), 4월 중순에는 고부군 강고리(江古里), 4월 말경에는 흥덕군 일남면 유점리(鍮店里)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부터 시작된 일제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으로 호남 지역의 의병에 대한 탄압이 강화됨에 김영백의진은 해산되었다.
임경조는 1908년 음력 9월 10일 김영백의진에 소속되어 1908년 음력 11월 10일까지 무기를 휴대하고 동료 의병 40명과 함께 전북 흥덕과 정읍, 전남 장성 등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임경조는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9년 12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全州支部:1909. 12. 1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