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8년 6월 광주공립농업학교 1학년에 재학 중 한국 역사, 한국어 교육 등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요구하며 동맹휴교에 참가했다가 근신처분을 받았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연합하여 1926년 11월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했다. 성진회는 이듬해 3월 해산되었지만, 성진회 출신 학생들은 각 학교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해갔다.
장재성(張載性)을 중심으로 광주공립농업학교,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전남사범학교 학생들이 연합하여 1929년 6월 독서회 중앙부를 만들었다. 광주공립농업학교의 조길룡(曺吉龍) 등이 중심으로 독서회(讀書會)가 조직되었는데, 문남칠도 여기에 참여하여 ‘사회과학’과 ‘신사상’을 연구했다.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참여했다. 그는 1930년 1월경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3월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당했다.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면소 방면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서(豫審終結決定書)(광주지방법원 예심괘:1930. 7. 1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권 1616~16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