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20년 3월 19일 당시 함평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학생으로 송대호(宋大浩)·김재문(金在文)·정영조(鄭永祚) 등과 함께 조사현(曺士鉉)의 주도로 함평 공립보통학교 졸업식날인 동년 3월 26일에 독립만세운동을 결행할 것을 모의하였다. 그리하여 동월 21, 22일에 함평군 함평면(咸平面) 함평리(咸平里)의 최봉길(崔奉吉) 집과 기타 몇몇 곳을 빌려 태극기 수십 매를 만드는 등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다가 일경에 발각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1년 7월에는 상해(上海) 임시정부 요원 김상옥(金相玉)과 만나 임시정부 의연금 모금활동을 함께 하고 독립운동에 관한 밀회를 여러 번 갖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0. 4. 26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 3·1운동비사(이병헌) 918면
- 내고장 전통가꾸기(함평군사편찬위원회, 1981) 76·77·79·8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03면
- 전남일보(1979. 2. 19)
- 찬양문(모성공회, 1926)
- 함평군사(함평군사편찬위원회, 1984) 472∼4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