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처음에는 조경환(曺京煥) 의진에서, 나중에는 의병장으로 전남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원오는 이같은 시기인 1908년 음력 10월 조경환 의진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하였다. 전남 광산(光山)·함평(咸平)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좌익장(左翼將)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1908년 의병장으로 추대된 조경환은 그해 4월 전해산(全海山) 의진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하는 등 큰 활약을 보였다.
이원오는 1909년 1월 조경환 의병장이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한 후 의병장이 되어 활약하다가 같은 해 음력 6월 12일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는 1910년 2월 24일 대구공소원에서 교수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4월 22일 기각,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내각고시 내란 및 폭동범에 대한 처벌건(규장각문서 18039)
- 통감부내거안 제12책, 기밀통발 제950호 내란범 이원오에 대한 판결집행(1910. 5. 12) (규장각문서 1785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82·3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