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6월 전남 광주군(光州郡)에서 김원국의진(金元國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원국(본명 金昌燮) 의병장은 1908년 6월경 조정인의진(趙正仁義陣)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9월 5일경부터는 조경환의진(曺京煥義陣)의 선봉장으로 활약하였다. 1909년 1월 10일 조경환 의병장이 광주 어등산(魚登山)에서 전사하자 흩어진 의병들을 수습하여 의진을 재편하였다. 이후 전남 광주를 비롯한 나주(羅州)ㆍ영광(靈光)ㆍ함평(咸平)ㆍ담양군(潭陽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6월 10일 일제 군경은 김원국이 부하 여러 명과 함께 전남 광주군 우산면(牛山面) 본촌(本村)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탐지하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긴급 출동하였다. 다음날 새벽 4시 일제 군경은 광주군 우산면 향악리(香岳里)를 포위하여 이운집 등 6명을 체포하였다.
1909년 11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 및 강도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賊魁 金元局 逮捕의 건(1909. 6. 11) 暴徒에 관한 編冊(警務局)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1권 36면
- 受刑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