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경기도 교하(交河)ㆍ마전(麻田)ㆍ파주(坡州) 일대에서 박종환의진(朴宗煥義陣)과 한창열의진(韓昌烈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8년 음력 2월 의병장 박종환이 경기도 장단군(長湍郡)에서 일본 토벌대와 교전 중 총탄에 맞자 의진이 흩어졌다. 이때 박종환의진의 중군장(中軍將) 한창열은 흩어진 의진을 수습해 의병장이 되었다. 이용현은 최순좌(崔順佐)ㆍ이춘흥(李春興)ㆍ유충렬(柳忠烈)ㆍ이명준(李明俊)ㆍ전복규(田福奎)ㆍ최춘식(崔春植)ㆍ권중삼(權重三) 등과 한창열의진에 들어가 파주와 교동(交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음력 2월 하순에는 파주군 공릉장(恭陵場) 집강(執綱)으로부터 군자금 200원을 모집하였고, 파주군 대원리(大院里)에서 120원, 경기도 교하군 쇠현동(釗峴洞)에서 동민들로부터 12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징역 10년을 받었다. 이에 상고하여 10월 16일 대심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경성공소원으로 환송되었지만, 11월 13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으며 12월 15일 대심원에서 원심이 확정되었다. 1912년 9월 13일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8. 9. 22)
- 判決文(大審院 : 1908. 12. 5)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19~23면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8. 11. 13)
- 判決文(大審院 : 1908.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