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9월부터 11월까지 경북 청송(靑松) 일대에서 박연백의진(朴淵伯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연백은 을사의병기부터 항일투쟁을 시작하여 1907년 11월 25일 의병 100여 명을 이끌고 의성군사무소, 경찰분견소를 공격하였고, 12월 23일 청송군 소정리(所井里)에서 적군과 교전하였으며, 25일에 의성군에서 일본수비대와 접전을 벌였다.
이신산은 1907년 음력 9월 11일 박연백의진에 참여하여, 그해 10월 14일 의병 13명과 함께 총기 6자루를 휴대하고 청송군 도동(道洞), 11월 3일에는 의병 12명과 함께 화승총 6자루를 휴대하고 청송군 산변리(川邊里), 11월 5일에는 청송군 서면(西面) 오음동(梧陰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2월 3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3월 1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1909년 4월 9일 대심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9. 2. 3)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9. 3. 18)
- 判決文(大審院 : 1909. 4. 9)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5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