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는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일어났다. 이성화 의병장은 1908년 3~6월 사이에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태인군(泰仁郡)·고부군(古阜郡)·순창군(淳昌郡) 등지에서 활동하였고, 1909년에는 일본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순화는 1908년 그의 부친이 박성경(朴成敬)에게 살해당한 것을 분하게 여기고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이성화가 의병을 일으키고자 병사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1908년 7월 29일 그의 부하로 들어갔다. 이후 1909년 1월 3일에 이르기까지 이성화의진에 속하여 약 20명의 의병과 함께 전라북도 부안군 소산면(所山面) 등을 다니며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있던 중, 1910년 8월 칙령(勅令) 제325호 대사령(大赦令)에 따라 풀려났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7.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12~6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