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7월과 음력 11월 사이에 함남 안변군(安邊郡), 평남 양덕군(陽德郡),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등지에서 조영환의진(趙永煥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함남 안변군 출신의 조영환은 1909년 5~11월 사이에 이춘실(李春實) 등 의병 수십 명과 함께 함남 안변군, 강원도 이천군, 황해도 곡산군 등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11월 11일 일본군 헌병에게 의병들의 소재를 밀고한 이사술(李士述)을 황해도 곡산군 수암동(水岩洞)에서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자화는 1909년 음력 7월부터 음력 8월까지 의병 수십 명과 함께 함남 안변군 영풍사(永豊社) 하리(下里)와 백일동(白日洞), 평안도 양덕군 공진동(孔眞洞), 황해도 곡산군 등지에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현금과 목면(木綿) 등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11월경에는 조영환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이천군 방장면(方丈面) 구당동(龜塘洞)에서 현금 10엔(円), 명주(明紬) 11필을 출급하겠다는 증서를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3일 함흥지방재판소(咸興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살인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4월 30일 경성공소원(京城控所院)에서 기각되었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3년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10. 4. 30)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320~3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