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제천 두학동에 살았으며 을미의병 1905년 정운경(鄭雲慶) 의진에 입진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여름 이강년이 의병을 다시 일으키자, 감군장(監軍將)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1일 김상태(金尙台)가 합류하면서 의진의 편제를 새롭게 정비하면서 김상태로 중군을 삼고, 백남규(白南奎)로 우선봉(右先鋒), 하한서(河漢瑞)로 좌선봉(左先鋒) 등을 삼았을 때 감군에 임명되었다. 이어 같은해 11월 수차례에 걸친 죽령전투를 치르고 난 후, 의진을 재정비할 때 좌군장에 임명되었으며, 영월 상동의 녹전에 주둔하면서 겨울을 넘길 준비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계속된 공세 때문에 영월·영춘간에서 힘든 전투를 계속 치렀으며, 12월 중순 복상골 전투에서 패전한 이후 의병들이 흩어졌을 때 영월의 광전리 쪽으로 나아가 본진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며칠 후 주천의 다래산 전투에서 선생이 거느리던 좌군이 와해되어 이강년의 북상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것 같다. 후에 이강년이 순국하자 김상태 등과 함께 잔여 세력을 이끌고 항전을 계속하였다. 일제 군경이 이세영의 의병활동을 압박하기 위해 본가를 불태우자, 선생의 가족들은 영춘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 후 의병을 해산한 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550면
- 韓末의 堤川義兵(구완회, 1997) 281·308·312·322·559면
- 雲崗先生遺稿(朴貞洙 編)附錄 卷2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권 226·249·296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