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1909년 전남 영광(靈光)ㆍ장성군(長城郡), 전북 무장(茂長)ㆍ고창(高敞)ㆍ부안(扶安)ㆍ흥덕군(興德郡) 등지에서 박도경의진(朴道京義陣)의 제2초(哨) 십장(什長)으로 활동하였다.
전북 고창 출신의 박도경은 1907년 9월 기삼연의진(奇參衍義陣)에 참가하여 종사(從事), 포사대장(砲射隊長)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1월 2일 기삼연이 순국한 뒤 그 부장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의병진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박도경은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독자적인 의진을 편성하여, 포사장(砲射將)으로서 김영엽의진(金永燁義陣),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 등과 연합하며 광주(光州)ㆍ남포(藍浦)ㆍ부안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성숙은 1908년 음력 11월 15일 전북 흥덕군 이서면(二西面) 석교리(石橋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음력 12월 20일에는 박도경 이하 4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고창군 읍내에서 1909년 음력 1월 15일까지 1천 6백 40환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8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ㆍ강도ㆍ살인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3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8. 19)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10. 9. 17)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56~8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