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북 보은(報恩) 사람이다.
충북 보은에서 김운로(金雲老) 의진의 봉기계획에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강제로 합병되자 이상곤은 비분강개하여 반일 무장투쟁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1914년 음력 8월 자신이 거주하는 충북 보은에서 김운로의 의병장이 거사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참여, 활약하였다.
이상곤은 정운기로부터 1907년 7월 일본의 압박에 의해 왕위를 아들 융희황제에게 양위하고 덕수궁에 반유폐 상태에 있었던 광무황제의 내명을 받고 충북의 김운로와 전북의 홍재식(洪在植), 서간도에 있는 이병춘(李秉春) 등이 의병을 일으킬 계획인 바, 경성에서는 각 도에서 모인 학자 200∼300여 명이 병사를 비밀리에 모집 중이며, 민병승(閔丙昇)이 20만 냥을 군용금으로 지출하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어 계획이 완성되면 제일먼저 일본인 모두를 서울에서 격퇴하고, 다음에는 조선귀족 박용효(朴永孝)·이완용(李完用) 등 친일파 거두를 살해할 것이며 총기는 중국군의 응원으로 입수하기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와 같은 취지에 적극 찬동하여 1914년 음력 10월까지 수 차례의 회합을 갖는 한편 현재는 세금 징수기이므로 군자금 징수를 위해서는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것이 좋으며, 총기는 같은 군 마로면 면장 박창빈의 집에 수십 정이 있다고 말하여 군자금 징수와 총기확보 방안을 제시하는 등 큰 역할을 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410·411·4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