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그는 일제의 국권침탈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1908~1910년 조경환(曺京煥), 전해산(全海山) 의진에 참여하여 대일항전에 나섰다.조경환은 1907년 대한제국군이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고 동년 12월 양상기(梁相基) 등과 함께 거의한 후 김태원(金泰元: 金準)의병장과 합진하고 자신은 좌익장을 맡았다.조경환은 같은 달 17일 영광군 사창을 습격하여 군량을 확보하고 1908년 1월 장성에서 적군과 일대 격전을 전개하여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3월에는 김태원의병장과 분진(分陣)하여 여러 의진과 연합하며 대일항전을 전개하다가 9월에는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여 호남창의대장에 추대되었다.이어 향교에 격문을 발송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흑석리(黑石里)에서 적병과 교전하며 기세를 떨쳤다. 동년 10월 오수산, 함평 석문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고 10월 29일에는 전해산의진을 지원하며 적병을 패퇴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11월에는 전해산의진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는 등 활동하다가 동년 12월 전투 중에 적탄을 맞고 순국하였다.이범진은 이와 같은 조경환의진에 소속되어 종사(從事)의 직임을 맡아 전남 영광, 함평일대에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1908년 9월부터는 연합활동을 전개하던 전해산의진에 참여하여 도포장(都砲將)의 중임을 맡아 전투에 앞장섰다.전해산의진은 불갑산(佛甲山)에서 적의 기마병을 포살하였으며 10월에는 영사재(永思齋)에서 수백 명의 적병과 접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광주 대치(大峙)에서는 많은 적병을 사살하고 총기와 탄약을 노획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이어 고막(古幕)에서 적의 병참을 공격하여 적병을 무찔렀다.이범진은 이와 같은 전해산의진에서 최전선의 중견지휘관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특히 1908년 9월 일본 헌병의 밀정을 처단 응징하였고 1909년 2월 함평군 매일치(埋一峙)에서 광주로 향하던 영광 주둔 적 기병대를 기습 공격하여 일본군 오장(伍長)을 부상시키는 등 영광·함평·나주 일대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그러나 일제가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진에 대한 탄압을 가중하자 더 이상의 활동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는 결국 일경에 붙잡혀 1910년 4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모살 등으로 교수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5월 2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6월 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統監府來案(奎章閣 所藏) 第1卷 1909∼1910年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49·850面
- 內閣告示(奎章閣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