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2월과 4월 사이에 경북 장기군(長?郡), 경주군(慶州郡) 일대에서 장헌문의진(蔣憲文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북 영일군(迎日郡) 출신의 장헌문은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1906년 5월 의병 300여 명을 모아 의병장으로 추대된 뒤 영일군을 중심으로 경주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 이후에도 의병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무범은 장헌문의진에 들어가 김재홍(金載洪)ㆍ김종호(金宗號)ㆍ김복선(金福善)ㆍ이태이(李太伊)ㆍ정만춘(鄭萬春)ㆍ최봉학(崔鳳鶴)ㆍ최용이(崔用伊)ㆍ장치일(張致一) 등과 함께 1908년 음력 2월부터 4월경까지 경북 장기ㆍ경주군 등의 지역에서 군수품 및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5월 9일 장기군 남면(南面) 공동(公洞)에서 장기ㆍ경주군의 산간 지역에서 활동을 하던 장헌문 외 9명이 체포되었는데, 이때 이무범도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 및 살인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8. 10. 7)
- 首魁 逮捕 및 射殺의 件(1908. 5. 9)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442, 4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