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장단(長端) 출신으로 1907년 김중군의진(金中軍義陣)에 소속되어 활동
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해산 이후 경기 서북부 고양·장단·마전 등지에
서도 의병항전은 불길처럼 일어났다. 특히 8월 9일 강화분견대에서 봉기한 해
산 군인의 일부가 일본군 토벌대를 피해 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의병부대의
전투력은 한층 높아졌다. 정용대(鄭用大)·연기우(延基羽)·박종환(朴宗煥) 등이
크고 작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대일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동민은 1907년 음력 9월 의병장 김중군의 부하가 되어 동료 의병 20여 명과
함께 병기를 휴대하고 연천(漣川)·삭녕(朔寧) 일원의 촌락에서 군자금을 수집
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동민은 소위 내란죄(內亂罪)로 기소되어 1908년 9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08년 11월 10일 대심원(大審院)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控訴院:1908. 9. 2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6~18면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大審院:1908. 11. 10)